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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 활동/내가 지은 수필

나의 마음, 너의 마음

by 헤드리 2021.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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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아이들을 좋아한다. 꼼지락거리는 입 모양, 작은 몸짓 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엘리베이터에서 어린아이들을 보면 괜히 장난치고 싶어진다.

그래서 어설픈 영어로 말을 건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고 어색한 표정이었던 어린아이들은 두세 마디를 듣고 나서

대부분 영어로 대답을 한다. 우리나라 영어 조기교육의 성과인가? 가끔은 놀라움을 느낀다. ​

 

386세대인 나는 당시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이 늦은 37살에 결혼을 했다.

그러다 보니 결혼하기 전까지 누나의 아들과 딸, 동생의 딸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 가서 연도 날리고, 자전거도 타고, 놀이방도 가는 등 노는 것부터 아팠을 때 병원을  데리고 가거나 커서는 공부를 포함한 여러 고민과 진로상담을 해주었다.

요즘도 조카들을 가끔 만나면 “내가 너희들을 키웠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로 시간과 관심을  쏟았었다. 물론 조카들은 "무슨 소리하시는 거에요?" 라고 부정하지만.

이렇게 아이들을 좋아하던 내가 결혼 후 딸을 낳았을 때 그리고 키울 때 얼마나 예뻐했을지는 상상이 될 것이다. ​

2005년 12월 25일 새하얀 눈이 내리던 크리스마스 아침, 눈보다 예쁜 딸이 태어났다.

예정일보다 2주정도 일찍 태어나서 다른 애들보다 많이 작은 2.79kg의 천사가 우리들의 가족이 된 그날 나는 너무 행복했다.

기저귀를 갈 때 냄새도 향긋했고 우유를 주려고 자다가 깨더라도 피곤하지 않았다.

4개월 됐을 때 모세 기관지염이 걸려서 중앙대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는 집에 가지 못하고  딸의 병상 옆에서 잠을 자면서 출퇴근을 했다.

작디 작은 손등에 링겔 주사바늘을 찔렀을 때 내 몸이 차라리 아팠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너의 우는 모습을 보는 마음은 더욱 아팠다. 다행히 폐렴까지 가지 않고 일주일 만에 퇴원을 했을 때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퇴근 후 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네를 태워서 놀 때 내가 하는 말에 대해 대답한다고 ‘어버버’ 하는 너를 보고 웃으면서 “빨리 커서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작은 바람을 가졌다.

아파트 뒤의 동산에 올라갈 때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겠다고 막 뛰어가고,  어디를 갈 때 쉽고 편한 길보다는 좁고 위험한 길을 가겠다고 나의 손을 잡고 위태롭게 가던 개구쟁이 딸.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뒤에서 손을 놓았는데도 잡고 있는 줄 알고 달리다가 결국 넘어졌지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그날, 탄천 다리에 뚫려 있던 구멍 사이로 물이 흘러가는 모습과 큰 잉어들을 보는 것을 좋아했던 너.

나는 너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퇴근 후 피곤해도 학교 가서 읽을 편지와 그림을 써서 가방에 넣어주었고, 가끔 편지를 넣다가 읽지 않고 가방 안에 있던 편지를 보고 마음이 좋지 않기도 했지만 나는 너의 즐거움을 위해 계속 편지를 썼다. ​

어느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다닐 때도 내가 예전에 나의 아버지에게 느꼈던 것처럼 좋은 습관을 갖게 해주려고 아침에 산에 데려가고, 부모로서 모범을 보이려고 항상 일찍 일어나고 공부하고 근면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학원을 다니는 것 보다는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중요하고 자기가 필요에 의해서 하는 공부가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을 경험했기에 알려주고 싶었고, 퇴근 후 피곤함을 이끌고 수학, 영어를 하나라도 더 쉽게 가르쳐주려고 했지만 나의 답답함은 결국 너를 울게 만들었고, 너는 아빠와의 좋은 관계를 위해 아빠로부터 안 배웠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냈었지.

좋은 자세를 유지해라, 수학 공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적어서 외워라,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라, 공부할 때는 핸드폰을 밖에 놓고 해라, 게임 좀 그만해라 와 같은 수많은 말이 듣기 싫고, 요즘 말로 꼰대의 말처럼 생각되고 짜증이 나겠지만 나는 네가 어렸을 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너를 사랑하고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을 너는 모르겠지?

 

요즘도 나는 아침 일찍 예전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나의 아버지가 나에게 만들어준 좋은 습관인 일찍 일어나고 운동하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산을 오르면서 아버지를 기억하고, 아버지께 감사함을 느끼면서 나도 내 딸이 나중에 이런 기억을 하도록 해줘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나의 이런 마음은 결국 ‘라떼는 말이지” 라는 유행어처럼 듣기 싫은 꼰대의 말이라고 생각하는 너의 마음으로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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