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간의 틈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 더 좁기도, 더 넓기도 한 것 같다.
틈의 크기에 따라 서로가 얼마나 친한 지, 좀 더 친해지기 위한 활동이 필요한 건지 등을 판단한다.
사내 연애는 예나 지금이나 조심스럽다.
30대 초반에 IT 회사에 다녔던 나는 당시에 후배들과 모임을 만들어서 영어학원도 다니고 소녀 가장도 돕고, 술도 마시면서 즐거운 회사생활을 했다.
남자, 여자 후배 합해서 5명이 잘 어울려 다녔다.
영어학원 이름이 기억나진 않은데 그 영어학원 등록하려고 새벽 6시에 학원앞에 줄서던 기억, MT 가던 기억, 신림동에 할머니와 살던 학생들을 도우러 1달에 한번씩 찾아갔던 기억, 정말 젊은 날의 추억이었다.
그러던 중 우리 모임중에 한 여자후배가 우리들 모임에 경력사원 여직원을 초대해서 데려왔다.
처음 그녀를 본 순간 난 한눈에 반해버렸다. 2살 아래였던 그녀는 그냥 내 마음속에 자리를 차지 해버렸다.
나는 그녀를 우리 모임에 참여하도록 유도해서 우리 모임은 6명이 되었다.
몇차례 모임을 하면서 그녀에게는 초등학교때부터 만나던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나는 가슴이 조금 아팠지만 그녀를 모임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어느날 강남 사과소주전문주점에서 모임을 하는데 그녀가 남자친구가 오고싶어하는데 모임에 초대해도 괜찮겠냐고 물어봤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다들 오케이를 해서 그녀의 남자친구가 주점으로 나왔다.
그냥 착해보이는 인상의 그녀의 남자친구였다.
오지랖 넓은 여자후배가 그에게 형부라고 하니까 그녀의 남자친구는 기분이 좋아져서 술을 연거푸 마셨다.
그런데 그녀가 남자친구를 대하는 것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빨리 그 자리를 정리 했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나는 자꾸만 그녀의 표정이 생각났다.
약간은 마지못해 남자친구를 만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왠지 그녀의 남자친구 자리에게 그 남자가 아닌 내가 자리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괜한 자신감이 들었다. 다음날 나는 출근해서 고민하지 않고 그녀에게 메일을 썼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의아하지만, 조금은 시적이면서 조금은 단도직입적으로 메일을 썼다. “내가 너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을까?” 아침에 메일을 쓰고 답장이 온 오후까지 내 심장은 두근두근 거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후 늦게 그녀로부터 답장이 왔다.
답장은 “틈이라는 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라는 내용이었다.
이 의미심장한 글을 보고 나는 내가 그녀를 생각하는 것 처럼, 그녀도 나를 생각하고 있구나 라는 확신이 섰다.
이후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결혼까지 성공하지만 못했지만 사귀는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 틈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이후 살면서 책이나 TV에서 틈이라는 단어가 들리면 나는 그때의 추억이 생각난다.
우리의 틈을 없애고 사랑을 했듯이 우리 결혼을 방해했던 틈을 잘 메꾸고 우리가 결혼했다면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처음부터 틈이 없는 관계는 없다. 틈을 메꿔가는 과정이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가끔 그녀에게 보낸 메일 내용과 그녀가 답장한 메일의 내용을 생각하면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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