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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 활동/내가 지은 수필

by 헤드리 2021.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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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이 물어보는 것 중에 하나가 '비가 좋아요? 눈이 좋아요?' 이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비 내리는 소리가 좋고, 비를 맞으면 내 몸이 축축이 아닌 촉촉해지는 것 같아 좋다.

또 풀, 꽃, 나무들이 노래부르고 춤 추는 것 같아서 좋다.

무엇보다 비 온 후에 세상이 깨끗해져서 좋다.

 

살면서 기억에 남는 비와 함께 한 추억은 세번 정도이다.

먼저 대학 때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폭우가 내렸는데,

우산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비에 몸을 맡기자'하며 비를 맞고,

비를 느끼며 걷던 그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다음은 1997년 여름, 같은 부서 후배, 다른 부서 동기, 이렇게 3명이 지리산 종주를 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거쳐 천왕봉, 경상도 어딘가로 내려가는 2박 3일 코스인데,

우리는 경상도 어딘가로 올 회사의 산악회 버스를 이용해서 서울로 갈 생각으로

1박 2일만에 종주를 했다.

2일차에 천왕봉에서 내려가기 시작한 때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산속에서 맞는 비는 너무 시원하고 행복한 기분까지 들었다.

초록색 나무잎 사이로 떨어지는 장대비는 자연과 내가 한 몸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그런데 무리하게 종주를 했고, 비로 인해 길마저 안 좋아 회사 후배의 무릎이 나가버렸다.

천천히 산을 내려가는데 하늘의 뜻인지, 우연히 하산하는 회사 산악회를 만났다.

같은 부서 여직원이 산악회 멤버에 있어서 무릎을 다친 후배를 맡기고

우리는 빨리 산을 내려가서 씻고 버스에서 쉬었다.

얼마 후 그 둘은 결혼을 했다.

우리는 둘을 우리가 결혼시켜 줬다고 우기면서 양복을 맞춰달라고 농을 했다.

자기를 버렸다며 울그락불그락 하는 후배의 얼굴을 재밌게 바라보면서.

 

마지막은 2000년 정도에 사랑했던 여자 친구와의 이별 때 내렸던 비의 추억이다.

그녀 집의 반대로 7개월 정도 사귀던 우리는 헤어지기로 했다.

엄마의 눈물을 본 그녀가 더이상은 못하겠다고 해서 헤어졌다.

헤어진 날 우연히 비가 내렸다.

항상 나에게 기쁨의 비였는데 그 날은 너무 슬픈 비였다.

태어날 때 울고, 그 때 두번째로 울었다.

남자도 그렇게 서럽게 울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지금도 가끔 비오는 날에는 그녀의 모습이 생각나고, 언젠가는 한번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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