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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 활동/내가 지은 수필

유산

by 헤드리 2021.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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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한다고 하면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냐 등의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진다 라고 농담아닌 농담을 던지고 간다.

새벽 5시 30분, 나는 매일 내 자신과 싸운다. 

나는 결국 졸리는 눈을 비비면서 힘겹게 일어나서 집앞에 있는 예진산을 오른다.

빨리 오르면 20분~25분 걸리는 나즈막한 산, 아니 동산이다.

예진산을 오르면서 나는 항상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한다.

초등학교때부터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아침마다 산에 오르셨다.

어렸을때는 얼마나 잠이 많은 때고, 작은 다리로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당시 올랐던 산은 예진산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산이었다.

집에서 산을 오르는 초입까지 거리가 지금 예진산을 오르는 거리보다 멀었다.

더울때나 추울때나 거의 매일 산에 올랐고, 산 정상에서 운동도 하고, 특이하게 산정상에서 팔던 따뜻한 콩물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4학년 2학기때 집이 이사를 하면서 올라야 할 산이 바뀌었을 뿐이지 아침 등산을 계속 되었다.

특히 이사간 집 근처에 있는 산에는 정상에 약수터와 목욕탕이 있었다.

아직도 기억이 선한데 한 겨울에 목욕탕의 물이 얼어도 매일 얼음물에 목욕을 했었다.

고드름을 보면서 옷을 벗을때 추운 느낌, 그리고 정신이 번쩍 드는 찬물 목욕은 지금도 몸서리 쳐진다.

어느 겨울날 아버지가 새벽에 나를 깨우셨는데 왠지 그날은 가기 싫었었는지 깼지만

자는 척하고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수차례 깨우시던 아버지는 포기하시고 그냥 혼자 집을 나가셨다.

푹 잘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아버지가 혼자서 어두운 산길을 올라가시는 뒷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벌떡 일어나 아버지를 쫒아 가서 손을 잡고 올라가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와의 등산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끝이 났다.

아버지와 매일 가던 등산을 끝났지만, 나는 혼자 살게된 대학생활, 그리고 직장생활때에도 습관처럼 매일 아침 일어나 운동장을 뛰거나 헬스장, 그리고 가까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어렸을때는 그렇게 싫어했는데 어느새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한창 인기 있었던 아침형 인간이 자연스럽게 된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다. 아버지가 나에게 좋은 습관을 갖게 해준 기억때문에 나도 사랑하는 딸에게 나중에 기억할 수 있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딸이 초등학교때 새벽에 두어차례 예진산을 데리고 올랐지만 너무 싫어해서 그 이후로는 같이 오르지 못했다.

딸을 몇번 어르고 화도 내보고 했지만 결국은 포기를 했다.

나는 지인들과 이야기할때 아버지가 나에게 큰 재산을 남겨주지는 않으셨지만 좋은 습관과 아버 지를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남겨주신 것을 감사한다 고 말한다.

내 딸도 나중에 내 나이가 되었을때 이렇게 나를 기억할 수 있는 좋은 유산을 남겨주고 싶은데 항상 안타깝다.

그때는 몰랐지만, 부지런함과 열심히 노력하는 습관을 유산으로 남겨주신 아버지가 오늘따라 더욱 그립다.

앞으로도 내몸에 밴 습관처럼,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하기 위해서 아침마다 산을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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