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하면서(누구나 한번쯤은)
25여 년 전 만약에 그 자리에 나갔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헤어졌던 여자 친구가 전화가 와서 '잠깐 보자'라고 했는데 가지 못했다. 가끔 비 오는 날 슬픈 발라드를 들으면서 커피 한 잔 마실 때, 내 마음이 감상적이 되면 '만약' 놀이를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만약에 ~했다면?' 사건이 있을 것이다. 물론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상상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때 기억으로 행복할 때가 있다.

#88번 버스의 기적은
(88번 버스의 기적은) 프랭크가 88번 버스에서 운명의 여인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프랭크가 그녀의 연락처를 잊어버린 후 60여 년 동안 88번 버스에서 그녀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이다. 프랭크는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부모님의 일을 물려받으려고 했는데 88번 버스에서 만난 그녀로부터 용기를 얻어 배우가 됐다. 은퇴 후 치매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는 60여 년 전 그녀를 찾고 있다. 프랭크가 그녀를 찾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함께 그녀를 찾으면서 발생하는 사건과 사람 사는 이야기이다.
(사이먼으로부터 실연을 당한 리비)는 런던에 있는 언니집으로 가던 중 88번 버스에서 노인 프랭크를 만난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프랭크로부터 60년 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프랭크의 옛사랑을 찾는 것을 돕는다. 인터넷을 이용하고, 다음은 포스터로, 러시아워 크러쉬를 이용해서 자기 일처럼 열심히 돕는다. 이 일을 하면서 프랭크의 좋은 친구들인 딜런, 에스메, 서니를 만나고 리비는 더욱 성장해 간다. 리비는 전 남자친구 사이먼의 애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결국 좋은 감정을 가진 딜런과의 삶을 선택한다. 리비는 처음에 런던에 왔을 때와 달리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완전한 성인으로 바뀌었다. 애벌레가 누에고치를 거쳐 나비로 바뀌는 과정을 보는 듯했다.
(건방진 상상, 작가가 뻔한 전개를 하고 있구나) 8장 페기의 젊은 날-내가 붙여 본 목차 제목-을 읽고 나서 '페기가 토마스의 그 여인인가 보네' 독자들에게 이렇게 복선을 깔아주고 나중에 둘이 만나는 그림이구먼, 난 역시 하는 건방진 상상을 했다. 이후 페기가 아들 이야기를 하고, 리비가 실려가는 구급차를 보고, 드디어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고 할 때, '그렇게 근처에 살았으면서 못 만났구나.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네'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에 프랭크와 만날 때도 60년 전의 그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토마스의 여인인 퍼시의 친구인 페기였다니? 역시 작가는 나 같은 독자보다는 한 단계 더 높은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작가님 너무 쉽잖아요'라는 생각을 한 나는 혼자 부끄러웠다.
(다르게 읽기) 작가 정희진은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책을 무조건 많이 읽기보다 생각하기를 권한다. 한 권의 책을 여러 권을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책을 더 읽으면서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책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다른 주제로 읽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88번 버스의 기적을 정희진 작가가 가이드한 대로 몇 가지 주제로 나눠보면 공동체의 협력, 펑크족에 대한 오해, 미혼모의 성장기, 치매환자의 삶은? 등이 있을 것 같다. 이 중에 2개 정도의 주제로 정리해볼까 한다.
# 공동체의 협력
60년 전 88번 버스에서 운명의 그녀를 만났던 프랭크는 그녀의 조언대로 배우가 된다. 자신의 삶을 살아온 프랭크는 그녀를 찾기 위해 88번 버스에 매일 오른다. 프랭크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다. 그러다 보니 88번 버스기사, 리비, 딜런, 에스메, 서니같이 주위에 프랭크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공동체의 일원들이 많다. 그들은 프랭크를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시간을 내서 포스터를 붙아는 등 프랭크의 그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런던의 동네에서 과연 그런 일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반면 우리나라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이런 관계의 공동체가 있다면 살아갈 만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 치매환자의 삶은
모든 병이 무섭지만 그중 치매가 가장 무섭다. 자신의 이름이나 가족들조차 기억을 못 한다고 하니 그 상태로 살아가는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배우 출신인 프랭크는 60여 년 전 버스에서 만난 운명의 여자를 찾고 있다. 주위의 친구들이 하나같이 그를 위해 발 벗고 나서지만 프랭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 치매 증세가 점차 나타나기 때문이다. 딸인 클라라는 그런 프랭크를 요양원으로 보내려고 하지만 프랭크는 자신의 집에서 자신을 스스로 돌보면서 살기를 원한다. 퍼시를 찾던 와중에 프랭크는 토스트를 굽다가 깜빡해서 화상을 입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요양원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프랭크가 요양원으로 들어가기 전 기적적으로 퍼시를 알고 있는 페기를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행복해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어머니가 절대 치매가 안 걸리고 건강하게 사시는 것이다. 물론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근처까지 다가온 무서운 치매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환자의 존엄성을 위해서 집에서 치료를 해야 할지, 환자뿐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을 위해서 요양병원으로 가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어느 날 나의 어머니는 '난 절대 요양원에 가고 싶지 않다'라고 말씀하셨다. 제가 모실게요 하고 하니 그렇게 좋아하셨다.
# 목차 명 붙여보기
이 책은 프롤로그 이후 1번 목차부터 51번 목차까지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고 나서 그냥 목차명을 붙여봤다. 1. 리비와 프랭크, 2. 레베카 언니집으로 피신, 3. 버스에서의 첫 그림, 4. 페기가 본 리비, 5. 리비의 오해, 6. 프랭크의 첫사랑, 7. 추억을 찾는 프랭크, 8. 페기의 젊은 날, 9. 프랭크의 사랑 찾기&딜런과의 만남, 10. 88번 그녀 찾기 프로젝트, 11. 딜런과 헥터, 12. 딜런, 헥터, 리비의 일탈, 13. 페기의 데이비드 이야기, 14. 사이먼의 새 여자친구, 15. 프랭크의 위기, 16. 에스메의 다른 방법, 17. 포스터 보는 페기, 18. 러시아워크러쉬, 19. 서니도 함께, 20. 리비와 딜런 사랑시작, 21. 프랭크와 데이트, 22. 구급차를 보는 페기, 23. 리비의 임신, 24. 가족들이 알게 된 리비의 임신, 25. 사이먼의 외면, 26. 페기의 만남계획, 27. 프랭크와 다른 그녀의 만남, 28. 그녀가 아니었네, 29. 페기의 소개팅, 30. 약해진 프랭크, 31. 임신&생일 축하파티, 32. 불청객 사이먼의 방문, 33. 리비의 혼란, 34. 팔러먼트 힐 꼭대기 데이트, 35. 철없는 사이먼, 36. 페기의 슬픈 나날, 37. 딜런을 찾아서, 38. 두 딸의 반란, 39. 아픈 프랭크와 딸 클라라, 40. 고민하는 리비, 41. 병원의 딜런, 42. 프랭크의 그녀, 43. 다시 만난 프랭크와 그녀, 44. 프랭크와 만난 그녀 친구 페기, 45. 프랭크와 퍼시, 46. 에스메의 결혼식, 47. 딜런과 재회, 48. 88번 앰뷸런스, 49. 88번 버스에서 태어난 생명, 50. 리비의 가족, 51. 행복한 프랭크
# 추천 점수 : 5점 만점에 5점 (스토리, 구성, 흥미, 교훈 4가지 평가요소)
88번 버스의 기적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프랭크아저씨의 첫사랑 찾기 프로젝트다. 단순하지만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는 아이, 사회 공동체 사람들과의 관계와 생활, 치매환자의 삶, 미혼모로 살아가기, 추억을 먹고사는 삶 등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정희진 작가의 '정희진처럼 읽기'라는 책을 안 봤으면 단순히 프랭크 아저씨의 옛사랑 찾기 정도의 이야기로 생각했을 것이다. 88번 버스의 기적은 재밌다. 작가는 위대한 것 같다. 영국에 사는 작가가 대한민국에 있는 독자인 나를 코끝이 찡하게 감동시키고, 같이 몸을 들썩이게 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놀랍다. 한번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 끝맺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책을 보면서 엄마를 생각했고, 딸을 생각했고, 친구를 생각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프랭크, 리비, 딜런, 에스메처럼 따뜻한 관심과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25여 년 전 '만약에 그 자리에 나갔더라면'의 주인공인 그녀를 생각했다. 어느 하늘 아래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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